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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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헤럴드]위대한 생명을 보듬은 또 하나의 갈대상자 「베이비박스」
윤홍식 편집국장 승인 2021.01.08.
이종락 목사 “지금까지 1,802명의 아기들의 생명이 보호 받아”
Q1. 먼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채워주심이 이종락 목사님의 사역과 주사랑공동체 모든 가족들 가운데 함께 하기를 축복합니다. 특히 올 한 해는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도 빈익빈 부익부라고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 심각한 고통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어떤지요?
A. 코로나는 세계적인 어려움이어요. 이럴 때에는 서로를 돌보는 따스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우리 공동체도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방송을 보았더니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사랑공동체도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구제하고 선교하는 부분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절에도 풍족하게 보내주지는 못하지만, 미혼모들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서 늘 감사합니다.
Q2. 베이비박스에 대해서 이제는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아직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목사님의 사역을 시작하시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신다면요?
A. 베이비박스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밖에 버려져 죽어가는 아이들 살리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2007년에 바람 불고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날 누군가 대문 앞에 아이를 놓고 갔다는 전화를 한 거여요. 그때가 새벽 3시 무렵이었어요. 벌컥 겁이 났지만 부랴부랴 뛰어 내려가 보니 고양이가 생선박스를 끌고 있었고, 생선 냄새를 맡은 고양이 발톱 흔적이 있는 생선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미숙아이면서 다운증후군 아이었어요. 몸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 아이를 안고 올라오는데 머리에 온갖 생각이 교차했어요. ‘생선박스에 아이를 담아 가지고 온 아이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또 당시에 장애 아이들을 많이 입양시켜 산다는 소문이 나서 종종 아이들을 문밖에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언젠가 대문 앞에서 아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버려지더라도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지요.
Q3. 생선박스에서 버려져 자칫 죽을 수 있었던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할 베이비박스를 떠올리신 거군요?
A. 처음부터 베이비박스가 떠오지는 않았어요. 처음에는 공중전화 부스처럼 어떤 공간을 만들까? 아니면 작은 방을 만들까? 여러 생각을 했는데 마땅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2008년에 신문에서 체코에서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그때 무릎을 탁 쳤지요. “그래! 이거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머릿속에 베이비박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구체적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당시도 장애를 가진 9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느라 정신없던 때였으니까요.
그러다가 2009년이 되었어요. 당시에는 버려지는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어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마치 정신이상자처럼 아이들이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이 환청과 환상으로 보일 정도로 마음이 아팠어요. 하나님의 소명의 부르심이라고 느낄 정도였어요. 그때 자녀 입원을 위해 병원에 갔는데 우연히 인큐베이터를 보게 됐어요. ‘인큐베이터 만하게 신생아만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로 아이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실외와 실내 방향으로 양문을 만들고, 누군가 아이를 넣으면 바로 알 수 있도록 벨도 달고 카메라도 달자’라는 구체적인 그림이 떠올랐어요. 2009년 11월에 그림을 완성하고, 철공을 하는 분을 불러서 보름 만에 만들었어요. 그렇게 베이비박스가 2009년 12월에 탄생됐어요. 베이비박스를 만들었지만 ‘하나님, 이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들어오지 않게 해 주세요. 다만 이 박스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만 주님이 이 문을 여닫게 해 주세요’ 기도했어요.
2010년 3월에 첫아이가 들어왔어요. 낮 2시 40분. 베이비박스 벨이 울리고 서둘러 내려가 베이비박스 문을 열어봤는데, 그 아기는 아직 탯줄이 남아 있고, 목욕탕 얇은 수건으로 배꼽만 덮여있는 아기가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그렇게 해서 베이비박스를 통해 지금까지 1802명이 보호를 받았어요.
A. 지난 2020년 한 해는 117명의 아이들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를 받았어요. 매해 평균 2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베이비박스를 찾았는데 올해는 117명으로 확 줄었지요. 그런데 이것이 좋은 현상이 아니어요.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결정하는 불합치 결정을 내렸어요. 실질적으로 낙태가 허용된 거죠. 헌재까지 가기까지 사회적 분위기도 낙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베이비박스를 찾는 아기들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여요. 어떻게 이렇게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있는지 슬픈 일이어요.
Q5. 베이비박스를 통해서 들어온 영아들은 어떤 보호를 받나요?
A. 일단 누군가 베이비박스 문을 열면 소리가 나고 몇 초면 바로 보호를 받게 돼요. 아이가 들어오면 확인 후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해요. 그럼 지구대에서 나와 기본적인 수사를 마치고, 아이가 안전함을 확인해요. 아이가 건강하고 장애가 없으면 3~4일 보호한 후 구청에서 데리고 갑니다. 그 아이들은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마치고, 일시보호시설을 거쳐 입양되거나 대부분은 보육원으로 보내지게 돼요. 보육원으로 보내진 아이들은 입양되지 않고 보육원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시설로 바로 보내지지 않으려면, 최소 15일에서 최대 2달 정도 아이들을 위탁해서 키워 성(姓)과 본(本)이 생길 때까지 키워주는 위탁가정이 필요해요. 그러면 아이들이 보육원이 아닌 입양 가능 아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Q6. 베이비박스를 찾는 엄마들의 대부분은 정말 키울 수 없는 여러 가지 형편이 있어서 이곳 베이비박스까지 오게 된 것인데, 베이비박스를 찾는 사연들은 어떤 경우들인가요?
A. 맞아요. 베이비박스를 찾는 엄마들에게 자꾸 아기를 버렸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러지 말아야 해요. 여기까지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그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거죠. 전국에서 다양한 사정을 가진 엄마들이 교회가 있는 이 언덕까지 찾아와요. 어떤 때는 하혈을 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산에서 홀로 아이를 낳았는지 흙 묻은 상태로 갓난아이를 감싸고 온 경우도 있었어요. 얼마나 급박한 상황에서 오로지 아이를 살리기 위해 맡기러 왔는지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 못할 정도의 이유가 있지요. 출생신고를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엄마들이 데리고 와요. 이를테면 10대 아이들은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요. 한 번은 14살 아이가 아기를 데리고 왔어요. 그 아이가 출산하기까지 겪었을 두려움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아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도 없고, 사회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밖에 버리든지 아니면 맨 마지막으로 베이비박스에 오게 되는 경우예요.
외도로 태어난 아이들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요. 또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도 그렇고 근친상간 같은 친족 간의 아이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요. 또 한국에 사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들이 낳은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배경이야 어떻든지 이 땅에 생명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 아닙니까? 법적으로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그 최소한의 권리마저 주어지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Q7. 어찌 보면 더 보호를 받아야 할 약자들인데 법적인 부분에서부터 차별을 받고 있군요.
A. 맞아요. 사실 예전에는 출생신고를 않아도 입양동의서나 양육권 포기 각서가 있으면 입양이 가능했어요. 그러다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절차가 까다로워졌어요.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허위 입양되는 사례도 차단하고자 신고제를 허가제로 바꾼 겁니다.
갓 태어난 생명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 오히려 높은 벽이 된 셈이 된 거죠. 실제로 출생신고를 의무화한 이후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가 급격히 늘었어요. 2010년 4명, 2011년 35명, 2012년 79명 수준이었다가 법이 개정되고 2013년에는 252건, 2014년 253건. 2018년까지 매 년 200건이 넘었지요.
하지만 여기에 아기를 데려다 놓으면 법적으로는 불법자들처럼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베이비박스가 불법이다. 유기를 조장 한다”며 말도 안되는 반대를 하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여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은 아기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온 거지요. 오히려 법이 현실을 모르는 거죠. 출생신고를 하면 호적에 미혼모란 꼬리표가 남고, 출생신고 없이는 입양도 어려우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이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베이비박스를 찾는 겁니다. 그래서 출생신고를 익명으로 할 수 있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이유지요.
Q8. 미혼모들과 키우지 못해 맡겨지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법적인 부분의 개선이 꼭 필요하군요.
A. 네. 사회적으로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미혼모들도 따스하게 품어주는 분위기가 필요해요. 전에 외국을 가보니 외국은 학교에 임산부실과 수유실도 있고 어린이집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만큼 그들을 보호한다는 거죠. 누구든지 생명이 축복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여요.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겪으며 산아 억제정책을 펴게 되고, 낙태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어요. 생명경시 풍조가 팽배되면서 결국 우리나라가 지금 저출산으로 인한 국가 위기까지 몰리며, 국가존립도 걱정하게 되었잖아요.
공동체에서 2000명 가까운 미혼모들을 만나서 상담해 본 결과 법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들이 보였어요. 현장을 체험하면서 나온 거죠.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법적인 부분을 연구용역을 줘서 제안된 법이 비밀출산법입니다. 위기 임신부터 출산까지 무조건 국가가 책임지는 거죠. 안전하게 출산하게 하고 태어남과 동시에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물론 미혼모들의 보호를 위해서 가명 출생신고가 가능하게 한 거죠. 그렇게 출생신고가 되면 아이들이 보육원에 가지 않고 양부모를 만날 수 있게 돼요.
거기에 더 해서 부성애 책임을 강화시켜 아이를 임신만 시키고 잠적한 남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법적인 책임을 함께 지도록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근거가 되지요. 일단 부성애 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법들이 발의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Q9.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이를 잠시 맡겼다가 생각이 바뀌어 다시 친모가 자기의 아기를 찾으러 오는 경우도 있나요?
A. 우리 주사랑공동체에서는 위기임신부터 비밀을 보호하고 출산도 도와주고 있어요. 일단 거주지가 없는 미혼모들이 찾아오면 그들이 출산을 도우며 선교관에 머물게 해요. 그리고 위로하고 칭찬해주죠. 생명을 지킨 것이 얼마나 칭찬받을 일입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선(先) 교육을 해요. 성가치관이나 성책임관 등을 가르쳐 주고 그들의 아픈 마음을 상담해주죠. 대부분 상대 남자에 대해 증오하며 저주하는 감정을 갖고 있어요. 아기 아빠에 대한 미움과 고통들 그리고 출산 우울증까지 사실 주님이 만져주셔야 해요. 어떤 엄마는 괴롭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아요. 그러면서 최대한 엄마가 그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돕지요. “지금은 이 아이로 인해서 힘들지만, 언젠가 이 아이 때문에 감사할 날이 온다. 너의 앞길을 주님이 지도하신다.이 아기가 세상의 기쁨이 될 거야. 하나님은 얼마든지 높이시는 분이란다.” 그러면 아기 엄마들의 마음이 달라져요. 그러면 엄마들이 눈물을 흘리며 말해요. “제가 졸업할 때까지만 키워주세요”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에 데리고 간 아이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입양이나 시설이 아닌 원가정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지금까지 209명이나 돼요. 우리 주사랑공동체는 직접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에 3년간 맞춤베이비키트를 보내서 지원을 해줘요. 한 번은 어떤 미혼모가 대학을 복학하고 싶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뜻이 있는 중소기업 사장과 이어줘서 학비를 지원해주기도 했어요.
Q10. 주사랑공동체에서 보호되는 아이들이나 장애아이들 그리고 직접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가정을 지원하는 사업까지 하려면 사실 많은 재정이나 후원이 필요한 것 같은데, 현재 사정이 어떤가요?
A. 이 일을 하면서 하나님은 인생 한 명 한 명을 굽어 살피시고 돌아보시는 분이심을 깨달아요. 코로나로 더욱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천사 같은 손길을 통해서 생명들을 살리고 계시죠. 얼마 전에는 베이비박스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대전에서부터 자기 생활비를 들고 오신 분이 있었어요. 그분도 넉넉한 형편이 아닌데도 자기 생활비 전부를 봉투에 담아 저 아래 계단에 서서 울면서 봉투를 전달하는 거예요.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재능이 플룻인데 발품 팔아 레슨을 하고 수강료를 모아서 그걸 기부한 경우도 있었어요.
Q11. 좀 목사님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A. 둘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4개월 만에 전신마비가 됐어요.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아이를 14년간 병상을 지키며 살폈어요. 병원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체험을 많이 했어요. 입원중 병원에 있을 때 병동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했어요. 병상에 누운 내 아이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 주변 환자들이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나는 아무 힘이 없는데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뿐인데, 성령의 감동이 돼서 기도하면 실제 병이 낫는 역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게 병원 선교사가 된 거죠. 이렇게 병실을 다니면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했어요. 물론 배척도 많이 당했어요. 복음을 영접하고 실제 낫는 역사가 나타나니까 내 현실은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지만 고통이 아니라 감사가 넘쳤어요. 어느 날 지친 마음이 생겼어요. 다른 사람들은 낫지만 정작 내 아이가 너무 병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 서운했던 거죠. 그때 주님의 모습이 환상 중에 보였어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울고 계시는 주님이 그러셨어요. “너는 나를 알지만 저들은 아직 나를 모른다” 라는 이 말씀 때문에 목사가 됐어요.
Q13. 마지막으로 목사님이 좋아하는 찬송이나 혹은 좋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저는 찬송가로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좋아하고, 성경 말씀은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와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2020년의 마지막 날을 하루 앞둔 수요일 오후. 유난히도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베이비박스가 있는 관악구 신림동 언덕을 올랐다. 갓 태어난 핏덩이를 안고 이 언덕을 올랐을 수많은 미혼모들의 마음을 헤아려봤다. 여기까지 오는 오르막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추스르지도 못한 몸일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를 안고 이 언덕을 오르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며 모세를 떠올렸다. 생선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통해 시작된 베이비박스는 지금은 위급한 생명을 지키는 박스지만 먼 훗날 이 땅에서 위대한 일을 이룰 놀라운 인물을 보듬는 모세의 갈대상자가 될 것이다.
출처 : 본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