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온다. 얼마나 기다렸던 귀한 아기인가. 쿵쾅 쿵쾅, 가슴이 뛰며 설렌다. 어휴휴, 저 꼬물꼬물 손가락 좀 봐. 하하하~. 어머, 코가 오똑하네. 호호호~. 감탄과 환호의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런데 슬프게도 ‘축복받지 못한 출생’도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15년째 합계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1.3명 이하인 ‘초저출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신생아는 2000년 63만여명에 달했지만, 2001년 55만여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는 43만명까지 떨어졌다. 출산율은 세계 224개국 중 하위 20개국 안에 들 정도로 심각하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 연구소는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았다고 한다.
편안하게 잠든 아기. 하지만 출생 신고가 안된 아기들은 입양 기관으로 갈 수 없으므로 절박한 상태에 놓인 미혼모들은 베이비박스를 찾게 된다. |
현실이 이런데도, 출산정책에 관한 촘촘한 지원망과 획기적인 정책이 미흡한 게 사실이다. 이를 대변하는 사례가 ‘베이비박스’다.
딩~동 딩~동, 갑자기 요란한 벨소리와 베토벤의 유명한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 음악이 나오자 상담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베이비박스로 달려간다. 곧 포대기에 싸인 신생아를 안고 들어와 가장 먼저 사진을 찍는다. 발견된 영아는 관악경찰서에 기아로 신고가 되고, 서울시립어린이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 인계된다. 그리고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서 일정기간 머무르면서 장기양육시설에 자리가 나면 그 시설로 옮겨져 생활하게 된다. 박혜빈(55) 상담사는 “아기는 축복의 선물이고 소중함의 존재인데 요즘은 매일 벨이 울려 안타깝다”고 했다.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이후 영아유기범죄가 급증한 것은 출생 신고 의무화 때문이기도 하다. 입양 허가 절차에 아기의 출생신고가 필수가 돼 각종 문서에 미혼모라는 ‘주홍글씨’가 남는 문제가 생겼다. 출생 신고가 안된 아기들은 입양 기관으로 갈 수 없으므로 절박한 상태에 놓인 미혼모들은 그래서 베이비박스를 찾게 된다. 베이비박스는 완전한 익명출산을 보장한다. 즉, 임신여성은 익명으로 여기에 아기를 놓고 감으로써 친부모에 대한 기록이 어느 곳에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법적 근거가 없다.
그 결과 입양과 달리 여기에 남겨진 영아는 부모를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마 젖에 입도 대지 못한채 갓 태어난 아기들이 화장실, 차디찬 도로변, 음식물 수거함, 나뭇잎 더미에 버려지고 있는 현실을 비춰보면 “베이비박스는 그나마 좀 낫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정말 슬픈 현실이다. 이 참에 미혼모와 귀한 아기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경제적ㆍ사회적 지원정책과 촘촘한 사회안전망에 좀더 고민하는 사회가 되면 어떨지….
사진ㆍ글=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