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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없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17-03-06   /   Hit. 3628

한국의 스티브 잡스는 없다

 

  • 입력 : 2017.03.06 20:24:49    수정 : 2017.03.07 13:24:14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여전히 혁신의 아이콘이다. 과연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서 나올 수 있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을 한 잡스의 생모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곧 입양을 보냈다. 만약 잡스의 생모와 같은 상황에 처한 한국의 어머니라면 어떠한 결정을 했을까? 아마도 아이를 낳기보다, 불법일지언정 낙태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혼모로서 자신이 사회에서 받게 될 냉대와 아이가 겪어야만 할 차별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가장 힘없고 소외된 모자(母子)에게 너무도 잔인한 사회가 아닐까?

정당한 이유나 변명 유무를 떠나서, 한해에 사십만 명에 달하는 태아가 낙태로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지금 죽음의 사회라 해야만 한다. 낙태에 의해 희생되는 아이의 수가 한해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의 수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더욱 슬프다.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방어할 아무런 힘이 없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인간인 태아가 잔인하게 생명이 끊기는 고통을 당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다.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소중한 가치로서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한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는 아이를 낳았으나 장애나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익명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주로 법적 혹은 윤리적인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논의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베이비박스는 법적인, 제도적인, 그리고 윤리적인 도그마를 벗어나서 숭고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생명을 살리고 난 후에 법과 제도, 윤리를 따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법률적 형벌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우리 문화는 유교 정신을 기반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그것이 인격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상하관계 규율이라는 문제를 지닌다. 가족을 협의의 혈연 관계로만 정의하는 것 또한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위계질서와 혈연 중심의 배타적인 의미의 가족이 아니라 천부의 인권을 존중하는 이타적 사랑과 생명을 기반으로 한 가족의 개념이 필요하다. 생명존중의 문화가 정착되면, 올바른 ‘가족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바로잡힐 것이다. 전통적으로 친부모와 친자식으로 구성되는 가족이 정상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이제는 미혼모와 자식, 양부모와 입양아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도 존중되고 그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사회로 발전해야만 한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 비전통적인 가족 공동체에 대한 의식주와 의료, 교육, 연금 등 종합적인 사회안전망을 마련하고, 전통적인 가족 형태와 동등하게 차별 받지 않고 국가의 복지 혜택과 경제적인 지원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극심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2006년 이후 정부가 15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될 기미가 없다고 한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무조건 돈만 쏟아 부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존중의 문화가 정착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다. 따라서,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 즉 제도적 환경(institutional environment)이 없는 곳에 혁신이 싹틀 수 없다. 모든 부모가 장애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그 아이가 성장하여 스티브 잡스와 같이 성공할 수 있도록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또한 경제적으로 포용할 수 있을 때 정의롭고 풍요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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