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박스/사진=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아기 예수가 탄생한 12월25일 성탄절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축복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어디서 출생했는지 알 수 없는 아기들도 있다. 한 해 평균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영아는 200명 안팎이다. ‘생명존중’과 ‘영아유기’ 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베이비박스가 뭐길래…“출생일을 꼭 적어달라”
베이비박스는 주사랑공동체의 설립자 이종락 목사가 2009년 12월에 한국 최초로 교회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 신생아가 들어갈 만한 박스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박스 안에는 영아의 체온 보호를 위한 온열 장치와 담요, 폐쇄회로(CC)TV 등이 설치돼있다. 벽면에는 ‘출생일을 꼭 적어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베이비박스에 얽힌 사연들은 참혹하다. 아기 얼굴에 흙이 묻어 있어 확인해보니 부모가 아기를 산에 묻으려다 차마 묻지 못해 이곳으로 왔는가 하면, 수면제를 먹고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나려다 데려온 10대 산모도 있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한 영화 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은 쓰레기가 아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희생되고 죽어가는 게 현실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며 “지금도 저마다 다른 이유로 아이들이 버려지고, 죽어가고 있다” 강조했다.
현재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은 서울 시립어린이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거쳐 장애아는 장애시설로, 비장애아는 일반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지난 2015년 2월 하늘 엄마가 태어난 지 4일 된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맡기며 남긴 편지. 사진/연합뉴스(주사랑공동체교회 제공) |
◆ 버려지는 영유아 증가, 입양특례법 개정안 때문?
보건복지부부에 따르면 이같은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는 2010년 4명에 불과했지만, 2012년 67명으로 늘어나더니 2013년 220명, 2014년 280명, 2015년 206명 등 연간 200명을 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증가 추세에 대해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을 이유로 들고 있다. 친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개정안에 따라 신분 노출이 두려운 미혼 부모들이 출생신고를 피하기 위해 영아유기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입양된 아동 수는 1057명으로 2011년 2464명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2012 입양특례법 시행 이듬해인 2013년엔 922명까지 줄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는 ‘입양특례법의 입법 영향분석’ 보고서를 통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영아를 유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베이비박스가 등장한 것에 따른 현상이지 입양특례법과 관계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주사랑공동체교회 조태승 목사는 9월 ‘비밀출산제 도입을 위한 특별법 제정 공청회’에서 “2017년 1월부터 8월 사이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를 찾은 135명의 친생부모 중 상담을 실시한 128명의 결과를 보면, 베이비박스를 찾은 주된 이유가 출생신고의 어려움을 드는 이들이 전체의 72%(92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국회/사진=연합뉴스 |
◆ 정치권, ‘비밀출산제도’ 추진…베이비박스 합법화 길 열릴까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유아 증가 추세와 입양특례법 개정안의 상관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하는 가운데 주사랑공동체교회와 정치권(오신환 바른정당 의원은)은 ‘비밀출산 및 임산부 지원에 관한 특별법’(가칭)을 연내 발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비밀출산제도는 실명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처지의 부모에게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제도다.이 법이 시행되면 익명의 산모에게서 아기를 위탁받아 불법 논란에 시달려 왔던 베이비박스의 합법화 길이 열리는 셈이다.
특별법 제안 주요내용에는 △상담기관 설치와 운영·상담기관 설치 운영 체계와 상담원의 비밀유지 의무 △긴급 도움전화 설치와 상담기관의 정보제공 △긴급 아기보호소의 운영 △비밀출산에 대한 지원-출생증서의 작성 및 보관 △비밀출산 이후의 영아에 대한 출생신고 △비밀출산 이후의 영아보호 △후견개시와 입양의 지원, 친생모의 신원정보의 비밀보장 및 예외적 공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이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구마모토(熊本)현 구마모토시 소재 지케이(慈惠)병원은 희망하지 않았던 임신을 한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을 할 수 있도록 비밀출산 제도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지케이병원은 비밀출산 제도가 도입되면 임신부의 위험한 출산을 막는 동시에 아이의 권리를 지켜주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일은 2014년 ‘비밀출산법’을 제정, 임신여성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고 있다. 프랑스도 신원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입양을 보낼 수 있는 ‘익명출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 법조계 “영아유기죄 조장·방조 공간” vs “책임감경 사유…영아유기죄 위법성 적어”
문제는 비밀출산제 상관없이 여전히 현행법은 영아유기시 처벌 대상이라는 점이다. 현행법(형법 제272조의 ‘영아유기죄’)상 영아 유기 행위를 2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타인이 저지르는 범행의 편의를 제공하는 ‘방조’ 행위 역시 처벌 대상이다.
앞서 지난 3월 정치권(경기도의회가)은 관련 조례(경기도 건전한 입양문화 조성 및 베이비박스(Baby Box) 지원에 관한 조례안)를 추진했지만 반대 의견에 부딪혀 보류된 바 있다. 주된 의견은 ‘영아유기죄’ 조장·방조였다.
당시 복지부는 이 조례안에 대한 검토의견으로 “입양문화 조성과 베이비박스 지원은 연관이 없어 함께 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사회적인 논란이 많은 베이비박스를 조례로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도가 베이비박스 운영 기관(시설)을 직접 지원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반대 견해를 분명히 했다.
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역시 ‘영아유기죄’를 조장·방조하는 위법한 공간에 불과하며, 아동복지법이 정한 최소한의 신고요건도 갖추지 못한 불법적인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미혼모연대와 아동인권포럼 등도 같은 이유로 베이비박스 지원 조례안 제정을 반대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조례안은 관계 단체, 기관과의 의견 수렴 기간을 고려해 보류됐다.
반대로 베이비박스는 영아 보호장치 기능을 하고 현행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적다는 의견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3년 9월 “관악구가 유기아동이 버려지는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베이비박스를 그대로 운영하도록 해 유기아동의 보호조치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인권 침해 진정을 기각했다. 인권위는 “베이비박스는 건축법상 불법시설로 보기 어려워 철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베이비박스에 아동이 신고되면 보호조치가 이뤄져 인권침해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엄주희 겸임교수(연세대 법학연구원)는 지난 2015년 12월 열린 ‘영아의 생명권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토론회에서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두고 가는 것을 ‘영아유기죄’라는 위법행위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베이비박스에 영아를 두고 가는 행위에는 영아유기의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고, 출산으로 심신의 균형이 상실된 비정상적 심신 상태인 점 등 책임감경 사유를 감안하면 영아유기죄의 위법성이 있다고 평가할 순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