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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투데이] 생명을 구원하는 쉰들러의 방주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19-05-14   /   Hit. 3934

2019. 05.14일자 크리스천투데이 오피니언/칼럼에 기고된 글입니다.

 

정소영 미국 변호사(세인트폴 고전인문학교 교장)

 

많은 분들이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으로 생각한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로부터 수많은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해 낸 독일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다. 당시 이 영화는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러브상을 휩쓸며 전세계인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원래 이 영화는 호주 작가 토마스 캐닐리(Thomas Keneally)의 소설 쉰들러의 방주(Schindlers Ark)를 원작으로 했다고 한다. 크리스찬으로서 방주라는 말을 들으면 내용을 보지 않아도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 쉰들러의 방주가 생각이 났을까? 그 이유는 올해 LG복지재단에서 수여하는 LG 의인상은 지난 10년간 베이비 박스를 운영해 오신 이종락 목사님이란 분에게 수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 분이 운영하고 계시는 베이비 박스를 통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약 1,500명의 아기들이 생명을 구했다고 한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이 뉴스가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최근 낙태죄 위헌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생명의 가치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불타 올랐기 때문이다.

낙태 반대론자의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낙태를 못하게 하면 당신이 키울거냐?하는 낙태 찬성론자들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을 못한다는 것이다. 뭔가 대안을 내놓고 낙태를 못하게 하든 말든 해야 할 것 아니냐?, 당신이 미혼모가 된 여자들의 인생을 책임질거냐? 하며 큰 소리를 치는 데에는 정말 할말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원치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엄격한 생명윤리와 책임의식을 청소년 때부터 잘 가르쳐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동시에 가능한 한 이 사회가 누구라도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갖추어 자기의 인생을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낙태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시행하는 데에는 교육과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애를 낳아야 하느냐, 아니면 낙태를 시켜야 하느냐 하는 절박한 순간에 생명을 지키는 쪽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낙태를 반대하는 명분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혼자서 해 보곤 한다. 우리나라는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교회마다 사랑이 넘치는 집사님, 권사님들이 많이 계신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교회가 한 아이 씩 맡아 기르면 어떨까? 내가 혼자 한 아이를 떠맡아 기르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한 교회 공동체가 낙태하려는 한 사람을 잘 설득해서 아이 엄마가 아이를 기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거나 아이를 맡아 길러주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교회들에게 나라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마련한 예산을 지원해주면 어떨까?

지금 나라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쏟아 붓고 있는데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매년 몇 십만 명의 아기들이 낙태로 죽어가고 있다고 하니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회들도 점점 다음 세대가 없어지고 전도도 힘들다고 하는데 아예 아이들을 맡아서 정말 제대로 된 주님의 자녀들로 잘 기를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베이비 박스 생각이 났다. 아기들의 생명을 살려주는 방주. 어떤 사람들은 영아 유기를 방조한다며 비판도 한다지만 그래도 낙태로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보다야 생명을 살려서 또 다른 삶의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쉰들러의 방주와 같은 생명 구원의 방주가 다시 나타나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리고 교회가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이 시대의 방주가 될 수 있을까?

 

원문 :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2404?fbclid=IwAR1pIyav41fFSq-0cN0E6d1Ork0P3KQ2fer1WSm9pmOmKf28GqYI3JH42z4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종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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