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언론에 비친 주사랑공동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소식 >언론보도

[동아일보] “신림동 언덕길 오른 어린 엄마들, 아기 살리려 온 거죠” [따만사]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3-09-15   /   Hit. 918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 설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
이종락 목사가 최초로 만들었던 베이비박스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마을버스에서 내려 언덕길을 10분여간 올라 도착한 이 건물 담벼락 계단길 옆에는 조그만 상자가 설치돼 있다.

이 상자 위에는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옆에는 아이의 이름, 생년월일을 꼭 적어달라는 문구와 함께 쪽지가 마련돼 있다.

이후 “당신이 이 아이의 생명을 지켰습니다. 끝까지 기도하고 신중하게 생각해 주세요”라는 문구 아래 손잡이를 당기면 노란색 상자가 열린다. 상자 안에는 “출생일을 꼭 적어 달라”는 당부와 함께 아기를 눕힐 수 있도록 담요가 깔린 공간이 나온다.

이 상자의 이름은 ‘베이비박스’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버려지는 아기들을 구하기 위해 2009년 12월 국내에서는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베이비박스의 시작이 된 생선박스

이 목사가 처음 베이비박스를 만들기로 결심한 건 2007년 꽃샘추위가 왔던 늦은 봄이었다. 그는 “새벽에 전화가 울렸는데 계속 한숨을 쉬면서 ‘죄송합니다. 대문 앞에…’ 그러더라. 바로 내려가 보니까 생선 박스 안에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기였고, 갖다 놓은 지가 좀 됐는지 저체온증으로 새파랗게 식어가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급히 아기를 안고 올라오다가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자칫 잘못했으면 어린아이 사체가 발견될 뻔 했구나. 그 뒤로 소문이 났는지 이후에도 대문 앞에, 주차장에 아기를 계속 갖다 놓는 일이 계속 생겼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갖다 놓을 수 있는 작은 방을 하나 만들자고 해서 그게 베이비박스로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고안하던 중 이 목사는 체코에서 베이비박스를 만들어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를 보게 됐다. 수소문 끝에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국내에 베이비박스를 도입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이메일을 계속해서 보냈지만 소식이 없었다.

이 목사는 “시간은 계속 가는데…그때 아이들이 자꾸 많이 버려져 죽었다. 2008년, 2009년에 특히 많이 죽었다. 도저히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서 철공 일을 하는 친구를 불러다가 이걸 만들게 됐다”며 최초로 만들었던 베이비박스를 가리켰다.



“여기 온 엄마는 아기 살리기 위해서 온 것”

이곳을 찾아 아기를 두고 가는 엄마들 10명 중 8명은 미혼모, 10명 중 7명은 10~20대의 어린 나이다. 성폭행 피해자, 아기 아빠가 배신하고 떠난 10대 미혼모 등 각자가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엄마가 아기를 베이비박스 안에 두면 벨이 울리고 “보호된 아이들은 천하보다 귀합니다”라고 적힌 반대편 문을 통해 24시간 상주하는 상담사들이 아기를 받는다. 상담사들은 곧장 뛰쳐나와 아기 엄마들을 만난다.

이 목사는 “여기 오는 엄마들 98%는 만난다. 가장 먼저 아기 엄마에게 칭찬을 한다. 전국 각지에서 언덕길에 있는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엄마가 아기를 살리기 위해서 온 거다. ‘잘 왔다. 네가 이 아이를 지켰다’고 칭찬한다”고 했다. 이후 “엄마, 아빠한테 말 못 한 거 다 털어놔도 된다”는 위로를 건네면 처음에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하던 아기 엄마들은 이내 눈물을 쏟아낸다.

이 목사는 “여기에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들은 거의 다 마음이 아픈 상태다. 들어주는 과정에서 어떤 엄마는 분노에 사지를 막 떨기도 한다. 뿅망치와 베개를 갖다 줬더니 베개가 다 터질 정도로 치는 엄마도 있더라. 그 정도로 분노와 미움이 폭발하는 엄마들을 우리가 위로와 치유해 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에 처음 들어온 아이
이 목사는 처음에 베이비박스를 만들고 “여기에 아이들 안 들어오게 해 주십시오. 정말 베이비박스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만 주님이 이 문을 열고 닫아서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베이비박스를 통해 구조된 아기는 무려 2102명에 달한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처음으로 들어온 아기를 잊지 못한다. “2010년 3월 오후 2시 40분쯤 벨소리가 났다. 등산로 근처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끔 이상한 박스가 있다고 하니까 구경한다고 문을 열기도 하는데 이날도 그런가 보다 하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런데 내려가다 보니까 아기 우는 소리가 나더라. 문을 여니까 목욕탕 수건으로 탯줄만 덮은 상태였다. 탯줄을 달고 들어왔다. 그러니까 금세 낳아가지고 바로 들어온 거다.”

그는 “처음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를 보면서 그 자리에 있던 5명이 모두 보자마자 울었다. 그러다가 ‘울지 마라. 이 아이는 정말 인간의 죄악의 물에 떠내려가다가 이 베이비박스를 통해서 모세와 같이 생명을 건졌다’라며 감사 기도를 했다’”고 떠올렸다. 이 아이의 이름은 모세가 됐다.

고시원 3층에서 태어난 아이
2102명의 아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묻자 이 목사는 고시원 3층에 살던 10대 미혼모 A 양을 떠올렸다.

이 목사는 “혼자 소리도 못 내고 아이를 출산한 거다. 하지만 고시원은 옆방에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나. 아기가 우니까 옆방 사람이 얘기해서 총무가 올라와 ‘왜 여기 아기가 있느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데려갈 거라고 답은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던 엄마는 옥상에 올라가서 아기는 던지고 자기는 뛰어내려야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과 2~3m만 더 가면 아기를 던질 생각이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온 거다. 친구가 ‘지금 TV에 베이비박스라는 게 나오는데 아기를 갖다 주면 안전하게 보호하고 키워준대’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아기 엄마는 신발도 안 신고 그대로 여기로 달려왔다. 만약에 그때 친구가 전화를 안 했더라면 그 아이도 엄마도 죽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입양특례법 이어 출산통보제…왜 악법 만드나”

처음 베이비박스를 만든 뒤 평균적으로 한 달에 2~3명 정도 들어오던 아기들이 2012년 8월부터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입양특례법 개정 때문이었다. 친부모를 쉽게 찾게 하는 등 입양아동의 권익과 복지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었지만 미혼모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 목사는 “그때부터 한 달에 최대 28명, 어떤 날은 하루에 5명도 들어왔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다. 출생 신고를 의무적으로 하라고 하는데, 10대 미혼모, 외도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이들, 난민이나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아기들 등은 베이비박스 밖에 방법이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부터 출생통보제가 시행이 되면서 이 목사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국회는 지난 6월 30일 본회의를 열고 출생통보제 도입을 위한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의결했다.

출생통보제는 아이의 출생 사실을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출생 미등록 영아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이며 법안은 내년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왜 이런 악법을 만드나. 법을 만들 때는 온 국민을 다 생각하고 또 위험에 처해 있는 사각지대가 있는지도 생각을 해보고 법을 만들어야 되는데 입양특례법도 그냥 만들어 가지고 입양특례법 때문에 출생 신고가 안 되는 사각지대가 생겼지 않나. 그 부작용으로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버려지고 죽고 했는데 또 이보다 더 강력한 법을 만들었다”며 분개했다.

그는 “출생통보제가 생기기 전에는 그나마 지금까지의 엄마들은 병원에서 출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밖에서 가정에서 아니면 산에서 빈집에서 출산한 아이도 많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안전하게 출산해가지고 여기 못 키우는 아이들 데리고 온 그런 엄마들도 많이 있었는데 이제 이것도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양특례법을 통해서 생긴 사각지대를 정리해 출생 신고를 다 할 수 있도록 해놓고 출산통보제를 만들었으면 당연히 해야 하지만, 이건 그대로 놔두고 더 강력한 법을 만들었다.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는, 출생 신고가 안 되는 이런 국민들도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 우리나라 국민이지 않나. 국민은 보호자가 없을 경우 국가가 보호자가 되는 거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고 국민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산통보제를 도입하면 출생 신고를 못하는 엄마들은 병원 밖 출산이 많아질 것이다. 그나마 병원에 가서 출산은 하고 못 키우는 아이들은 베이비박스에 맡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 이것도 안 되는 거다. 그러면 낙태가 늘어날 것이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이어 “가슴을 쳐야 될 일이다. 안 그래도 저출산으로 나라가 완전히 기울고 있는데 한 생명이라도 더 보호하고 더 살리고 태아의 생명도 존중하고 태어날 수 있도록 보호를 하고 태어난 생명도 안전하게 양육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 대책을 세우고 이렇게 해야 될 이 시점에 오히려 더 기름을 끼얹는 법은 나라의 큰 불행”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출산제 같이 도입해 보완해야”


출생통보제 도입에 따라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제도인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의 조속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익명 출산을 장려할 수 있다’는 반대 입장이 나오면서 논의가 지연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25일 ‘위기 임신 및 보호 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 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문턱을 넘었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신원을 숨기더라도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산모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되 출산 기록을 남겨 추후 산모 및 자녀의 동의 하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보호출산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여야가 보호출산제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출생통보제에 따른 부작용인 ‘병원 밖 출산 방지’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목사는 “보호출산제가 같이 가면 보완이 된다. 출산통보제를 독일에서 시행했는데 아이들이 밖에서 자꾸 죽었다. 출생 신고를 못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살해하고, 유기하고, 파묻고 이러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서 이제 익명 출산 보장으로 보완을 했다. 보호출산제는 한마디로 말하면 생명을 살리는, 나라를 살리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부성애 법도 통과돼야 한다. 달아난 아기 아빠를 추적해 아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운전면허 취소, 여권 취소, 월급 차압 순서로 압박하는 제도다. 지금은 6개월 면허 정지 정도인데 이렇게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목사는 “교제 중이던 여성이 임신하면 도망쳐 버리는 남성들이 많아서 여성 혼자 출산과 양육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이 남성을 추적해 DNA 검사를 진행하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 소득을 압류하면, 남성들도 성에 대한 책임 의식이 생기고 베이비박스에 오는 아기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 모두 후원금으로…인색함 마음 아파”


베이비박스와 미혼모 지원 등의 모든 운영은 공식적인 지원금 없이 모두 후원금으로 이뤄진다. 이 목사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모두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생명을 중시하고 미혼모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이 조금씩 후원한다. 하지만 요즘은 다 어렵다보니 조금 인색해지는 면들도 있어서 참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아이들 하는 우유하고 기저귀 이런 것들 예전에는 여기도 꽉 찼었다. 그러면 많은 미혼모들한테 보내줬었는데 지금은 분별을 좀 해야 하니까 참 안타깝고 더 안타까운 건 수술해야 하는 아이들, 주거지가 없는 아이들, 엄마가 극단적인 생각을 여러 번 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따로 분리해 치료를 해야 되는데 이런 부분 등은 우리가 몇 번 가서 위로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이 참 많다”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