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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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크리에이터 이온 작가의 이야기_베이비박스가 지키는 것들
주사랑공동체 동역자 디지털 크리에이터 이온 작가의 이야기 中
서울의 한 골목, 누군가가 아기를 조심스럽게 작은 문 안으로 넣는다. 그렇게 또 한 생명이 세상과의 유일한 끈이었던 엄마와 떨어져 낮선 공간에 놓인다. 베이비박스는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 사회 윤리와 제도의 온기를 측정하는 온도계가 아닐까 한다.
국내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베이비박스는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공동체’가 운영한다. 정부 지원 없이, 오직 민간의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으로 2009년 이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논쟁은 뜨겁다. 생명을 살리는 마지막 통로라는 주장과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사회적 움직임, 그 실효성은?
2024년 7월부터 시행될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그간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던 위기 임산부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출산하게 하여 신원을 숨기고 출산이 가능토록 한 이 법은 분명히 ‘베이비박스 없는 사회’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에는 의문점이 있다.
우선, 이 제도는 완전한 익명 출산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저 ‘가명 출산’에 머문다. 일정 수준의 신원정보가 의료체계 내에 저장되고 사후연계가 이루어진다. ‘기록의 공포’다. 학력, 불륜, 성폭력, 가족해체 같은 민감한 상황에 처한 임산부들에겐 그 기록 자체가 출산을 위협하는 또 다른 악몽이 되고 폭력이 된다. 명명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제도보다는 차라리 무연의 보호가 가능한 베이비박스를 택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는 얘기다.
베이비박스는 제도의 부재에서 비롯된 피난처로서의 기능 이상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윤리적 행위가 만들어낸 최후의 공공성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누군가는 새벽녘에 울리는 알람 벨 소리에 뛰어나가 아이를 받아 품고, 따뜻한 수건으로 감싸서 체온을 유지시킨다. 아기에게 쏟아지는 애틋한 시선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어떠한 허가나 조건도 우선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책이 아니라 존엄에 반응하는 사람들
베이비박스의 소멸은 이러한 시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될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지금은 아니다.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한 삶의 골목, 낙인의 두려움, 존재를 숨기려는 절박한 선택들이 남아 있는 한, 유효할 것이다. 베이비박스는 비공식 안전망의 필요성, 제도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공간이다.
근본적 해결책은 이런 것이다. 좀 더 확실한 익명 출산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여성들의 신원을 일정 기간 비밀로 보장하고 출생 아동에게는 다 성장한 후에 열람권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위기 임신 상담부터 출산까지 연계해 줄 수 있는 공식 기관이 있어야 한다. 종교단체나 지방 복지센터가 아닌, 신뢰 가능한 비영리 중개기구를 전폭적으로 구축해야만 한다. 그리고 비공식 유기와 출산에 대한 차별적 개념보다는 사전 예방 중심의 제도 설계가 있어야 한다.
베이비박스를 없애려거든, 먼저 그 자리가 불필요해질 정도로 따뜻한, 사람 중심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귀한 생명을 품에 안고 아무 조건 없이 보살피며 허기를 달래주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법 제도의 그림자 틈을 메우고 있는 이 현실, 인간 존엄의 응급장치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제도가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베이비박스는 그저 병렬만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리고 이 구조물이 꼭 폐기돼야만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점, 생명을 끌어안고 지켜내는 이 사회의 마지막 안온한 접점 중 하나라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디지컬 크리에이터 이온 작가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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